관악청년청 체크메이트 청년 동아리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스트링제이' 동아리 활동의 일환으로 다녀온 공연 "Prom 2 앙상블블랭크 X 제롬 콤테" 후기를 남겨본다. 실내악 공연이겠거니 예상하고 갔는데 의외의 현대음악을 마주해서 굉장히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밌었던 경험이라 오히려 후기를 남겨보고 싶어졌다. 곡마다 자세한 후기는 아래에 있다.
베리오, 트롬본 솔로를 위한 시퀜자 V (1966)
L. Berio, Sequenza V for trombone solo
▶루치아노 베리오(1925-2003)라는 이탈리아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의 곡. 피에로 분장을 한 트롬본 연주자가 무대 뒤편에서 연주하며 나오는 오프닝이 인상적이었다. 현란한 연주를 하다가 본인 목소리를 간간히 내는 걸 보면서 웃음이 좀 나기도 했다. 연주자가 아니라 정말 광대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트롬본 끝부분에 오목한 그릇같은 것으로 소리를 조절하던데, 처음에는 원래 악기의 부속품인 줄 알았다가 점점 이질적으로 보이면서 이 무대를 위한 도구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솔로 연주가 끝난 후 피에로가 무대 한 귀퉁이에 드러누웠는데 1부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던 모습도 재미있었던 부분.
슈베르트, 심각한 미소 (2013-2014)
A. Schubert, Serious Smile
▶ 프란츠 슈베르트로 깜빡 속았던 A. Schubert의 심각한 미소. 과연 A. Schubert는 누구일까?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던데 역시 프로그램북을 사야했나 싶다. 사실 처음에 공연장에서는 1부 전체가 끝난 줄도 모르고 왜 한 곡만 하는가, 2부로 다 넘기는 건가 엉뚱하게도 착각을 했었다. 되짚어보니 이 곡의 시작이 아마도 트롬본 연주가 끝나고 드러누운 이후에 시작된 곡이었던 것 같다. 고장난 옛날 티비나 주파수가 맞춰져 있지 않은 라디오에서 들릴 법한 잡음이 곡 내내 깔려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함께 본 멤버 한 명은 백남준 작가의 작품이 떠오른다고 했었다. 도시의 온갖 소음 속에 이미 살고 있는데 연주회장에서까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게 듣기가 괴로운 부분도 있긴 했다. 또 피아노의 연주를 들으려나 기대하다가도 건반이 아닌 허공에 연주를 하는 장면이랄지, 전자첼로로 연주를 하는 듯하다가도 지판을 문질러버리는 그런 모습에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좋은 소리를 듣고 싶은 갈망이 커서 더 아쉽게 느껴졌나 보다. 번쩍이는 조명과 화려한 미디어아트가 펼쳐지는 가운데 지휘자의 열정적인 몸짓도 하나의 퍼포먼스로 보여졌다. 작품의 의도를 마음대로 상상해보자면, 혼돈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진짜 악기가 연주되지 않고 피상적인 쇼로 뒤범벅된 그런 예술의 어두운 뒷면을 보여주고자 한 건가 싶다. A. 슈베르트씨, 무슨 의미일까요? 정말 작곡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모차르트, 세레나데 10번 B플랫 장조 "그랑 파르티타" 중 III. 아다지오 (1781-1782)
W.A. Mozart, Serenade No.10 In B Flat Major K.361 "Gran Partita" - III. Adagio
▶ 이해하기 어려운 무대가 끝나고 어디선가 천상의 소리가 들려오는데 우리가 아는 클래식 음악이 연주되니까 너무 반가웠다. 그런데 무대가 아닌 콘서트홀의 맨 꼭대기층에서 연주되는 것이었다. 위에서 울려퍼지는, 정말 천상의 소리였다. 관악기의 향연, 잔잔하지만 위엄있게 부드럽게 감싸주는 느낌. 어지러운 소리를 듣다가 관악기 세레나데를 들으니 저절로 눈이 감기며 편히 쉬는 기분이었다. 3악장만 연주되어서 우리 모두 아쉬워했다.
에릭 사티, 벡사시옹 (1893) *앙상블 버전 (편곡: 최재혁)
E. Satie, Vexations
▶ 2부의 첫 곡이었던 에릭 사티의 벡사시옹. 1부의 단출한 구성이 아니라 현악기와 관악기, 하프 등등 많은 연주자가 함께 했다. 이 곡도 뭔가 멜로디라는 걸 찾기 어려운 곡이었는데 전체 곡들 중에서 이 곡이 제일 기억이 안 난다. 최재혁 지휘자가 앙상블 버전으로 편곡한 이 곡을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아봤는데 찾기가 어려웠다. 이날만 들을 수 있는 공연이었던 걸까! 연주회 후에 에릭 사티의 원곡을 들어봤는데 원곡도 약간 어둡고 난해한 느낌이긴 했다. 기억나는 건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악기들의 소리가 아니고 굉장히 희한했다는 점.
최재혁, 클라리넷 협주곡 "녹턴 III" (2017) *클라리넷: 제롬 콤테
Jaehyuck Choi, Clarinet Concerto "Nocturne III" *Clarinet: Jerome Comte
▶ 최재혁 작곡가가 2017년 제네바 콩쿠르에서 이 곡으로 최연소 우승을 했다고 한다. 협연자가 등장할 때 환한 조명이 켜지며 박수로 시작하는 기존의 공연 스타일로 시작되지 않은 게 흥미로웠다. 앞서 연주된 곡이 천천히 마무리되고 조명이 오히려 어두워지며 클라리넷을 든 연주자가 천천히 무거운 얼굴로 무대로 나왔다. 내가 느끼기엔 얼굴에 결의가 가득 차 보였는데 다른 멤버는 너무 무서워보인다고도 했다. 내가 아는 클라리넷의 소리가 아니라 굉장히 낯선 음색을 많이 들려주었는데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뭔가를 토해내는 그런 느낌의 연주였다. 애플뮤직에 이 곡이 있어서 다시 들어보는데 뭔가 클라리넷에서 아쟁같은 소리가 들려서 신기했다. 급작스럽고 현란하고 예측불가능한 이 곡을 들으면서 떠오른 이미지는 처음 가 보는 낯선 도시의 밤거리를 나 혼자 걷고 있는 모습이었다. 킬러가 나오는 스릴러 영화의 OST처럼 들리기도 했다. 문득 녹턴III이 있다면 I이나 II도 있는지 궁금했는데 그건 아직 모르겠다.
베르트랑, 스케일 (2008-2009)
C. Bertrand, Scales
▶ 프랑스 클래식 현대음악 작곡가 크리스토프 베르트랑(1981-2010)의 스케일. 모든 악기가 자기만의 스케일을 연주하는데 그것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곡이었다. 제각기 움직이는 것 같은데 자기만의 자리가 있고 어떤 리듬이 생겨나는 듯했다. 이 곡을 들으며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많이 보던 꽃이 점점 활짝 피었다가 지는 걸 초고속으로 찍은 영상들이 떠올랐다. 그러한 꽃들의 영상 수백수천이 눈앞에 동시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무한한 자연과 우주의 순환 속에 내 자신은 작은 존재로 느껴지는 그런 기분도 느낀 것 같다. 이날 프로그램 중 다시 듣고 싶은 곡은 모차르트 다음으로 이 곡이었다. 다행히 유튜브에 실황영상이 있어서 다시 들어볼 수 있었다. 공연 이후에 이 작곡가가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참 안타까웠고, 이 사람의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슬프기도 했다.
https://youtu.be/qUD2_VSzMtU?si=VhATnWeQKxJr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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